과자 하나, 거짓말 하나

“어, 이거 새로 나왔네? 맛있겠다!” 토요일 오후, 남자친구 눈치 보며 마트 과자 코너를 지나가던 중이었습니다. 그가 신상 과자를 카트에 툭 넣었을 때, 저는 6,800원이라는 가격표와 이미 차 있는 카트를 보며 속으로 계산기를 튕기고 있었습니다. 그리고 그가 두 코너 앞으로 걸어간 그 3초 사이, 조용히 과자를 꺼내 선반에 올려놓았습니다.

계산대에서 “어, 그 과자 없네?”라는 물음에 “아, 몰라. 못 봤나봐”라고 얼버무렸지만,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도 그 6,800원짜리 과자 생각이 멈추지 않았습니다. 저만 알고 있는 그 3초의 행동이 계속 마음에 무겁게 남았던 탓입니다.

남자친구 눈치 보며 마트에서 몰래 과자를 내려놓던 그 3초

사실 이 이야기를 주변에 꺼내기가 참 애매합니다. 고작 과자 하나 내려놓은 걸 가지고 “그게 무슨 잘못이야” 혹은 “그걸 왜 말 안 했어?”라는 반응이 돌아올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. 하지만 제가 느낀 찜찜함의 정체는 과자가 아니었습니다. 남자친구 눈치를 보며 그가 없는 사이에 조용히 그의 선택을 되돌린 것, 그리고 그 행동을 들켰을 때 솔직하게 말하는 대신 얼버무린 것. 그 두 가지가 겹쳐서 계속 마음에 남았던 겁니다.

절약하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감정입니다. 카트에 물건이 쌓여가는 걸 보면서 가격을 가늠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. 그런데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다른 문제입니다. “이거 이번엔 패스할까?”라는 한마디와, 말없이 선반에 올려두는 것 사이에는 꽤 큰 차이가 있습니다.

‘못 봤나봐’라고 했지만, 나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

얼마 전 비슷한 이야기를 친구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. 친구 역시 마트에서 3만 원짜리 과자 세트를 집어 드는 남자친구 몰래 물건을 진열대에 꺼내두었다고 합니다. 계산대에서 뒤늦게 상황을 안 남자친구가 “처음부터 비싸다고 말했으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왜 말없이 치웠냐”라며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는 이야기였습니다.

그 말을 듣는 순간 제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. 처음부터 “이거 이번엔 빼자”라고 했다면 과연 화를 냈을까요? 아마 흔쾌히 수용했을 겁니다. 오히려 혼자 판단하고 행동한 뒤 거짓말까지 덧붙인 제 태도가 상황을 훨씬 이상하게 만들었던 셈입니다.

이게 ‘나쁜 행동’이냐는 질문보다, ‘왜 말을 못 했느냐’는 질문이 더 중요하게 느껴집니다. 남자친구 눈치를 보느라 말을 못 했던 건지, 아니면 말할 필요를 못 느꼈던 건지. 그 차이가 꽤 클 수 있습니다.

잘못한 걸까, 아니면 우리가 아직 그 말을 못 꺼낸 걸까

솔직히 그 자리에서 말할 수 없었냐고 물어본다면, 돌이켜봤을 때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. 하지만 ‘혹시 기분 나빠하면 어쩌지’, ‘내가 쩨쩨해 보이면 어쩌지’ 같은 쓸데없는 계산이 입을 막았습니다. 남자친구의 반응을 미리 짐작하고 조심스러워했던 마음이 오히려 더 어색한 상황을 만들어낸 셈입니다.

문제는 이런 행동이 반복될 때 발생합니다. 말없이 물건을 치우고 들켰을 때 얼버무리는 일이 쌓이면, 상대방은 자신이 고른 선택이 존중받지 못하고 은연중에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. 결국 배려라고 생각했던 행동이 상대에게는 은밀한 통제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.

그게 배려인지 통제인지를 나누는 기준은 명확합니다. 상대가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느냐입니다. “이거 이번엔 빼도 돼?”라고 물어보고 함께 결정했다면 배려입니다. 몰래 내려놓고 아무 일 없었던 척했다면, 의도가 어떻든 상대는 자신의 선택이 검토도 없이 삭제된 셈입니다.

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남자친구를 보며, 혼자 선반 위에 두고 온 과자를 생각했습니다. 마음에 계속 남아있던 건 과자 그 자체가 아니라, 솔직하게 말해도 되었을 순간에 입을 닫아버린 제 태도였습니다. 다음 장보기 날에는 혼자 눈치를 보며 결정하기보다, “이거 이번엔 빼도 될까?”라는 가벼운 한마디를 먼저 건네볼 생각입니다.

혹시 마트에서 파트너가 고른 물건을 말없이 내려놓거나, 반대로 자신이 고른 게 어느새 없어진 걸 발견한 적 있으신가요? 그때 어떻게 하셨는지 댓글로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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